이 글을 1,2,3 부로 나눠서 구성해 두었던 것 입니다.  
이리 저리 미루다 보니 1부에서 멈처 서버렸습니다.  
노트에 메모해 둔 것을 그대로 옮겨 둔 이후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


 나는 내가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백화점 직원이 마치 무슨 소원이든지 말해보라는 듯이 당당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물었다.
  "..."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아무도 내가 원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본 적은 없었다.
  "무엇을 찾으시는 지요?"
  천사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나에게 마법을 걸어 왔다.
  "마누라요"
  "..."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느껴졌을 때, 언제부터 시작된 음악이었는지 몰라도 갑작스럽게 내 귀에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잘 기억할 수 없지만 Sweet People의 마법의 성인가 하는 곡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음악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마누라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요리책 하나를 달랑 사들고는 그 백화점을 빠져 나왔다.


   내가 하숙방에 도착했을 때, 혼자 사는 남자의 방에서는 썩어가는 나의 육신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나는 남자의 방에게 요리책을 선물로 던져 주었다.  책상은 마시다 만 소주 병을 대접하였다.  방바닥은 구겨진 원고로 뒤덮여 있었다.  한 모금을 마시고 방 한 구석에 누워보니 천장이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천장을 끌어 안고 잠이 들었다.  잠을 잘 수 있다는 것, 꿈을 꿀수 있다는 것은 신이 내게서 빼앗아 가지 못한 나의 마지막 행복이었다.

  몇 시간을 지났는지 또는 몇 일이 지났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망할 놈의 집구석에는 달력 하나 시계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게 몇 일인지 몇 시 인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여간 나의 뱃속에서 아우성 치는 소리에 나는 먹이를 구할 시간임을 알 수가 있었다.


  문밖을 나서자, 나는 거짓말 같이 아름다운 햇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너무나 고귀하고 아름다워서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로 눈부신 소리였다.  그 소리에 내 귀가 멀었는지, 모든 도시의 소리를 삼켜버린듯 달동네의 골목길은 너무나 조용하기만 하였다.
  (오늘은 반드시 구걸을 해보리라.)

  나는 참으로 비겁한 놈이다.  나는 거지나 다름이 없다.  아니다.  이런 생각은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사념의 사치일 뿐이다.  여하튼 나는 지금 구걸을 해야 할 처지일 뿐이다.

   육교를 지나오면서 나는 오늘도 스승님을 볼 수가 있었다.  멍석을 깔아 놓은 채 거무스렇게 얼룩진 발바닥을 긁으면서 묘한 표정을 짖고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나보다 더 행복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행동 하나 하나를 유심히 살펴 보며 한 동작의 의미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육교를 지나 은행 문을 잡아 끌었을 때, 문 안쪽에서는 냉정한 공기가 멍한 나의 정신을 할퀴었다.  그리고 나는 자동 입출금기에 다가서서 나의 주문을 외웠다.  '1818'.  나의 카드 비밀 번호이다.  잔액을 조사해 보니, 이제 겨우 2만 3천원이 남아있었다.  나는 마지막 비상금이라 생각하고 만원만을 뽑아 나왔다.  물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스승님이 계신 육교를 지나왔다.




  그러다 니가 죽지
  그러다 내가 죽지
  죽지 못해 살고
  힘에 겨워 살고
  그러다 니가 죽지
  그러다 내가 죽지
  겨울밤 눈 밟아 보기도 전에
  니캉 내캉 얼어 죽지
  마음 시린 바람으로
  계절의 길 모퉁이에서
  웅크린 채로
  걷어가지도 않을 시체
  추위에 썩어보지도 못한 채
  그녀의 손길도 닿지 않는 곳에서
  이러다 내가 죽지
  이러다 니가 죽지


   오늘은 드디어 계획했던 거지수업을 시작하기로 한 날이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나는 준비해둔 멍석과 깡통 그리고 구멍이 난 모자를 집어 들고 집을 나설 준비를 마쳤다.  깡통이 너무 새것처럼 보여, 이리 저리 긁고 때를 묻혀 보았다.  재차 확인하고는 나는 준비물들을 가방에 넣어 가지고 집을 나섰다.

  문을 나서면서부터 나는 가슴이 벅차도록 뛰어오는 묘한 희열을 느낄 수가 있었다.  비교적 인적이 뜸한 곳에서 부터 사업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점찍어 둔 동네 어귀에 있는 육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육교에 도착했을 때, 중학생을 보이는 여학생 두 어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옆에 꼭 끌어 안은 채 그냥 육교를 지나쳤다.  나는 계단을 다 내려와서 학생들이 다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올라서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몇 명의 아주머니들이 반대편에서 수다를 떨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육교 중간쯤에서 나는 멈춰 섰다.  그리고 아주머니 일행들이 시야에서 벗어나기 만을 기다렸다.

  이제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나의 가슴이 사정없이 펌프질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얼굴이 화끈해 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한 동안을 망설였다.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비겁한 자식!  너는 틀렸어!  너는 가짜야!)
  잠자고 있던 나의 잠재의식이 또다시 나에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하였다.
  나는 몇 시간을 육교에서 서성거리다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집에 도착해서는 나는 가방을 던져 버리고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울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를 잤는 지 알 수는 없었지만,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한 밤중이었다.  나는 허기진 탓에 집을 나서 근처에 있는 24시간 편의점으로 향했다.  거리에서 벌레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달도 하늘에서 나를 빙그레 비웃고 있었다.  비참한 생각 뿐이었다.


  편의점에 도착해서 나는 라면 하나와 계란 그리고 신문 하나를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물을 조금 많이 넣은 상태에서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을 집어 넣고 나는 라면을 끓였다.  국물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멀건 국물 속으로 면을 집어 넣었다.  라면은 금새 익사해 버렸다.

  튼튼한 스포츠면을 따로 떼내서 냄비 받침을 만들고는 나는 사회면을 반찬 삼아 라면을 먹었다.  라면을 다 먹은 후 나는 냄비를 뻔뻔하기만한 정치면으로 덮어 버렸다.  언제 일지는 모르지만 설겆이를 하기전까지 잠시 놈을 가둬두기로 했다.  그때 나는 내 눈에 번쩍 뜨이는 기사를 발견했다.

  "신춘문예"  네 글자가 나의 허기진 정신을 강타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것이 오고야 말았다.  나는 쓰다만 원고들을 줏어 모으기 시작했다.




  나의 글은
  시라기 보다는
  짧은 낙서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어찌 부끄러운 이름으로
  시를 들먹일 수 있으랴
  나의 글에는 악보가 없으므로
  그저 공간을 떠돌며
  헤메이는 중얼거림일 뿐이다
  나의 글은
  시라기 보다는
  생각없이 그려보는 작은 그림이다
  나의 글에는 색채가 없으므로
  그저 마음의 언저리를 맴도는
  희미한 기억의 흔적일 뿐이다


  원고마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수의 날개'
  나는 완성된 나의 원고에게 마지막으로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조금씩 초초해지  시작했다.  번번히 생명이 불붙지 못하고 이내 꺼져버리기만 하였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원고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묘약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거리로 들로 산으로 시장으로 강으로..   나는 닥치는 대로 바쁜 발걸음을 옮겨 다녔다.  나의 날개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묘약을 찾아 나는 몇 일 밤낮을 노숙하였다.


   원고마감을 이틀 앞두고 나는 다시 나의 방으로 돌아와 마지막 작업에 열중하였다.  그리고 원고마감일.  나는 살며시 숨을 쉬고 있는 나의 날개를 들고 신문사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나의 날개를 접수시키고 신문사를 나섰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투명한 소리를 빛내며 나의 의식을 꿰뚫고 지나갔다.




  조금 더 가보면 하늘이 보이려나
  그리움을 가슴 깊이 눌러 두고 온
  내 고향이 그립다.
  조금 더 올라가면 하늘에 오르려나
  마음은 허공에 있는 데
  내 몸이 너무도 무겁다.
  애야, 육신이 너무 무겁구나
  이곳에 두고 가자
  내동댕이쳐지는 저 껍질 ...
  미련이련 가, 이 고통은 ?
  조금 더 가보면 하늘이 보이려나
  조금 더 올라가면 하늘에 오르려나
  무거운 육신, 숨가쁜 피로
  어쩌면,
  잘 못 왔는지도 몰라.


   드디어 신춘문예 당선자 발표날이 되었다.  나는 설레이는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새벽부터 나는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아침이 되기를 기다린 나는, 아침이 되자마자 신문을 사러 집을 나섰다.  편의점이 참으로 멀게만 느껴졌다.


   편의점에 이르렀을 때, 나는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뛰는 가슴 떨리는 손으로 나는 신문을 사들고 나서면서 당선자 발표란을 찾아보았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하나 하나 집어보면서, 당선자 발표란을 찾던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신문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나의 의식도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얼마 후, 나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길바닥에 나는 쓰러져 있었다.  나는 사람들 틈을 헤치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금 떨리는 마음으로 신문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나의 날개는 거기에 없었다.


  나는 비상금으로 남겨둔 만 삼천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 돈을 모조리 소주와 맞바꾸어 버렸다.


   얼마나 마셨을 까?  나는 언제 부터 걷기 시작했었는지, 제 2 한강교를 걷고 있었다.  나는 난간에 매달려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커먼 강물이 출렁거리며 춤을 추는 것을 바라보니 갑자기 구토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어지러운 정신을 땅바닥에 눕혔다.  하늘에는 오리온 별자리가 밝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수 많은 다른 별자리들이 나의 멍한 의식을 비집고 나에게 들어 왔다.

  얼마나 지났을 까?  나는 나의 두 날개를 파닥이며 상체를 일으켜 다시 강물을 바라 보았다.  나는 다리 난간에 올라서서 나의 날개를 펴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발뒷굼치를 들어 보았다.  바람이 살며시 나의 날개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나는 나의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이에 난간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나는 공간에 메달려 있는 동안 생각했다.
  (날아 올라서 별이 되리라..)

  잠시 후 차가운 강물이 나를 끌어 안아 주었다.  한 참 후, 나는 나의 별이 무거운 육신을 벗어던지고, 하늘로 비상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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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1996년)  (0) 2010.08.10

이 글은 어느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그 자리에서 한 번에 써내려간 것 입니다.

때문에 연결이나 표현들이 어색한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아이디어만 스케치하고 나중에 수정해야지 하다가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네요 ^^;





   출발점은 절망
   목적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새로운 여정
   새로운 발걸음이다.
   언제나처럼
   살아서 돌아오자


산골짜기 어느 구석에 어느 나무 어느 나뭇가지.
낙엽 하나가 떨어집니다.
  "이제 네 갈 길을 가거라."
나무가 낙엽에게 말을 합니다.
  "어디로 가야 하죠?"
  "바람을 따라 가렴."
  "바람이요? 그게 누구죠?"
  "저기...  너를 데리러 오는구나... 잘 가거라 아가야..."
낙엽은 바람에 실려 떠나 갑니다.
낙엽이 바람에게 말을 걸어 봅니다.
  "아! 당신이군요.  당신이 여름 내내 저를 흔들고 간지럽혔었죠?
반가와요. 그런데, 어디에 계신거죠?"
  "..."
  "제 말이 안들리나요? 여보세요?"
  "..."
이윽고 바람이 멈추고 낙엽은 진흙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여보세요, 기다려 주세요! 같이 가요..."
낙엽은 무서워 떨며 흐느껴 울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내 마음 속에 이는 바람
   행복과 불행
   희망과 절망 사이를 넘나드는
   흔적도 발자국도 찾을길 없는
   당신은 내 마음 속의 그림자


  "왜 울고 있니?"
들국화가 낙엽에게 물었습니다.
  "길을 잃었어요."
  "어디로 찾아가는 길인데?"
  "바람을 찾아서요."
  "그런데 왜 울고 있지?"
  "바람이 사라져 버렸어요."
  "호호호...  아가야 걱정하지 마라.  그는 곧 다시 올게야."
  "아주머니는 바람을 아시나요?"
낙엽이 울음을 멈추고 들국화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알고말고. 그에게서는 항상 아주 아름다운 향기가 났지.
푸른 들풀로 치장을 하고 다녀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 제가 찾는 바람이 아닌가 봐요."
낙엽은 금새 풀이 죽어 버렸습니다.
  "왜지?"
  "내가 찾는 바람은 향기가 나지 않았는 걸요."
  "그래...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여기서 볼 수 있는 건 향기로운 바람 뿐인걸.."
  "괜찮아요. 아주머니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이제 다시 바람을 찾아 갈래요."
잠시 후 들국화가 피어있는 들판에서 꽃 향기를 몰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내 풀잎들이 바람에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내게
   무엇인가 말을 건네려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뜻을 알지 못하고
   돌아서는 때이면
   바람은 옷자락을 붙들어 봅니다
   눈과 비는 길을 막고
   애원을 합니다.


낙엽은 다시 모래밭 위에 떨어졌습니다.
  "안녕?"
땅콩이 인사했습니다.
  "안녕, 넌 누구니? 어디에 있니?"
  "여기야, 돌맹이 바로 뒤를 봐."
  "넌 왜 거기에 혼자 있니?"
  "사람들이 형제들을 데리고 가던 중 나만 떨어졌어."
  "사람?"
  "응, 난 땅 속에서 자세히 못봤지만 우리 식구 모두를 뽑아가 버렸어..."
  "너.. 혹시 바람을 아니?"
  "바람?"
  "응, 그래, 바람. 아주 멀리서 부터 달려왔다가 살며시 우리를
흔들고 사라지는 바람말야."
  "아! 그거라면 어제 봤어."
  "그래? 직접 봤단 말야?"
낙엽은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어떻게 생겼니? 바람... 바람 말야!"
  "글쎄, 뿌옇게 생긴 것이 항상 해 뜨는 쪽에서 달려와서는 떼를 지어서 심술을 부리곤 했어...
   우리 막내도 들쥐에게 물려가다가 바람을 만나 불쌍하게도 잡혀 먹히고 말았어..."
  "그래... 그것도 내가 찾는 바람은 아닌 가봐..."
낙엽은 금새 다시 풀이 죽고 말았습니다.
  "내가 찾는 바람은 아주 착한 바람인 걸..."
  "바람도 여러 가지가 있는 거구나..."
  "응, 그런가 봐. 나도 잘 모르지만... 왜 엄만 내게 그런 것을 알려주시지 않으셨을까?..."
  "저기 또 바람이 온다..."
  "안녕, 땅콩."
  "안녕, 낙엽. 꼭 바람을 만나!"
낙엽은 또다시 하늘로 치솟아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가보면 하늘이 보이려나
   그리움을 가슴깊이 눌러두고 온
   내 고향이 그립다
   조금 더 올라가면 하늘에 오르려나
   마음은 허공에 있는데
   내 몸이 너무도 무겁다.
   얘야, 육신이 너무 무겁구나
   이곳에 두고 가자
   내동댕이쳐지는 저 껍질...
   미련이련가, 이 고통은?
   조금 더 가보면 하늘이 보이려나
   조금 더 올라가면 하늘에 오르려나
   무거운 육신, 숨가쁜 피로
   어쩌면
   잘못 왔는지도 몰라


낙엽은 산과 들과 강을 돌아다니며 바람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서서히 붉은 모습도 사라지고 점점 어두운 색깔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발자국 소리일거야...)
낙엽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지쳐갔습니다.
  (모르겠어, 바람이 무언지... 왜? 바람을 쫓아가야 하는지!..
    난 무언지...  왜 태어났는지...  또 어디로 가는 건지...
    이 길을 다 가면 무엇이 나올지...  

    왜? 내겐 모두 대답을 안해주고 질문만 하는 걸까...

    '넌 누구니?', '이름이 뭐니?', '어디로 가니?'....)
낙엽은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지쳐갔습니다.  

그리고 몸을 움츠려 땅에 엎드리고 어디로든 날아가려 하지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야!"
낙엽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미안.. 난 눈이 없어.. 그래서 볼 수가 없어..."
낙엽은 이미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허리 부분이 부러져 버렸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눈이 없다고?"
  "그래, 난 지렁이야!  우린 원래 눈이 없어.

   그러던 어느날 두더지 아저씨를 만나 햇님에 대해서 들었어..

   아주 멋있는 얘기였지.. 그래서 난 햇님을 보기 위해서 길을 나선거야.."
  "그랬구나..."
낙엽이 대꾸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엄만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리셨지.  

   밖으로 나가면 위험할 뿐 아니라...

   눈이 없기 때문에 햇님을 볼 수가 없다고..."
  "안됐다..."
낙엽은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난 괜찮아..

   난 내가 어떻게 태어났고 누군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난 어떻게 살 것인지가 궁금할 뿐이야."
  "그래...?  넌 나보다 더 행복한 거 같아...

   난, 어떻게 살 것인지 모르겠어...

   넌 용기있게 네 길을 가는구나...

   난 내가 찾아야 할 바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걸... "
  "그런데... 넌 햇님을 봤니?"
  "응! 봄, 여름 내내 햇님만 보고 살았는 걸..."
  "그래! 햇님은 어떻게 생겼니?"
지렁이가 흥분하여 낙엽을 재촉하며 물었습니다.
  "햇님은 둥그렇고 언제나 환하게 웃고 계셔...

   따사로운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내 몸이 푸른 빛을 잃어갈수록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
  "그럴 줄 알았어... 햇님은 아름다울 거라 항상 믿어왔어...
   반드시 직접 보고 말거야!"
  "그래, 꼭 성공하길 빌께..."
  "너두..."
둘은 또다시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삶은 만나는 것이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이다.
   삶은 흐르는 것이다.
   잡을 수 있는 것은 자신 뿐
   시간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삶은 잃어버리거나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만나는 것이다.


  "누구세요?"
  "난 눈이란다.  이제 너는 쉬거라..

   너의 몸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이 잉태할 거란다."
  "이제 저는 죽는 건가요?"
  "죽음은 없단다.  삶은 흐르는 거란다.  

   너의 생명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는 거란다."
  "하지만 저는 아직 바람을 만나지 못했는걸요..  

   죽기 전에 그를 만나야해요.."
  "바람? 그는 너와 항상 함께 있었쟎니?"
  "예?"
  "바람이 없었다면 네가 어떻게 하늘을 날며 이곳까지 올 수 있었겠니?"
  "내가... 바람과... 함께 있었...다고...?"
  "바람은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으니

   못 만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럼 어떻게 알 수가 있나요?"
  "바람은 온 몸으로 만나는 거란다.  

   너는 이미 바람을 만났고 그러니 찾을 수가 없는 거지."
또다시 바람은 낙엽을 살며시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눈 덮인 들녘에는 햇살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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