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람 (1996년)

류종택 2010. 8. 10. 12:16

이 글은 어느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그 자리에서 한 번에 써내려간 것 입니다.

때문에 연결이나 표현들이 어색한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아이디어만 스케치하고 나중에 수정해야지 하다가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네요 ^^;





   출발점은 절망
   목적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새로운 여정
   새로운 발걸음이다.
   언제나처럼
   살아서 돌아오자


산골짜기 어느 구석에 어느 나무 어느 나뭇가지.
낙엽 하나가 떨어집니다.
  "이제 네 갈 길을 가거라."
나무가 낙엽에게 말을 합니다.
  "어디로 가야 하죠?"
  "바람을 따라 가렴."
  "바람이요? 그게 누구죠?"
  "저기...  너를 데리러 오는구나... 잘 가거라 아가야..."
낙엽은 바람에 실려 떠나 갑니다.
낙엽이 바람에게 말을 걸어 봅니다.
  "아! 당신이군요.  당신이 여름 내내 저를 흔들고 간지럽혔었죠?
반가와요. 그런데, 어디에 계신거죠?"
  "..."
  "제 말이 안들리나요? 여보세요?"
  "..."
이윽고 바람이 멈추고 낙엽은 진흙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여보세요, 기다려 주세요! 같이 가요..."
낙엽은 무서워 떨며 흐느껴 울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내 마음 속에 이는 바람
   행복과 불행
   희망과 절망 사이를 넘나드는
   흔적도 발자국도 찾을길 없는
   당신은 내 마음 속의 그림자


  "왜 울고 있니?"
들국화가 낙엽에게 물었습니다.
  "길을 잃었어요."
  "어디로 찾아가는 길인데?"
  "바람을 찾아서요."
  "그런데 왜 울고 있지?"
  "바람이 사라져 버렸어요."
  "호호호...  아가야 걱정하지 마라.  그는 곧 다시 올게야."
  "아주머니는 바람을 아시나요?"
낙엽이 울음을 멈추고 들국화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알고말고. 그에게서는 항상 아주 아름다운 향기가 났지.
푸른 들풀로 치장을 하고 다녀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 제가 찾는 바람이 아닌가 봐요."
낙엽은 금새 풀이 죽어 버렸습니다.
  "왜지?"
  "내가 찾는 바람은 향기가 나지 않았는 걸요."
  "그래...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여기서 볼 수 있는 건 향기로운 바람 뿐인걸.."
  "괜찮아요. 아주머니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이제 다시 바람을 찾아 갈래요."
잠시 후 들국화가 피어있는 들판에서 꽃 향기를 몰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내 풀잎들이 바람에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내게
   무엇인가 말을 건네려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뜻을 알지 못하고
   돌아서는 때이면
   바람은 옷자락을 붙들어 봅니다
   눈과 비는 길을 막고
   애원을 합니다.


낙엽은 다시 모래밭 위에 떨어졌습니다.
  "안녕?"
땅콩이 인사했습니다.
  "안녕, 넌 누구니? 어디에 있니?"
  "여기야, 돌맹이 바로 뒤를 봐."
  "넌 왜 거기에 혼자 있니?"
  "사람들이 형제들을 데리고 가던 중 나만 떨어졌어."
  "사람?"
  "응, 난 땅 속에서 자세히 못봤지만 우리 식구 모두를 뽑아가 버렸어..."
  "너.. 혹시 바람을 아니?"
  "바람?"
  "응, 그래, 바람. 아주 멀리서 부터 달려왔다가 살며시 우리를
흔들고 사라지는 바람말야."
  "아! 그거라면 어제 봤어."
  "그래? 직접 봤단 말야?"
낙엽은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어떻게 생겼니? 바람... 바람 말야!"
  "글쎄, 뿌옇게 생긴 것이 항상 해 뜨는 쪽에서 달려와서는 떼를 지어서 심술을 부리곤 했어...
   우리 막내도 들쥐에게 물려가다가 바람을 만나 불쌍하게도 잡혀 먹히고 말았어..."
  "그래... 그것도 내가 찾는 바람은 아닌 가봐..."
낙엽은 금새 다시 풀이 죽고 말았습니다.
  "내가 찾는 바람은 아주 착한 바람인 걸..."
  "바람도 여러 가지가 있는 거구나..."
  "응, 그런가 봐. 나도 잘 모르지만... 왜 엄만 내게 그런 것을 알려주시지 않으셨을까?..."
  "저기 또 바람이 온다..."
  "안녕, 땅콩."
  "안녕, 낙엽. 꼭 바람을 만나!"
낙엽은 또다시 하늘로 치솟아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가보면 하늘이 보이려나
   그리움을 가슴깊이 눌러두고 온
   내 고향이 그립다
   조금 더 올라가면 하늘에 오르려나
   마음은 허공에 있는데
   내 몸이 너무도 무겁다.
   얘야, 육신이 너무 무겁구나
   이곳에 두고 가자
   내동댕이쳐지는 저 껍질...
   미련이련가, 이 고통은?
   조금 더 가보면 하늘이 보이려나
   조금 더 올라가면 하늘에 오르려나
   무거운 육신, 숨가쁜 피로
   어쩌면
   잘못 왔는지도 몰라


낙엽은 산과 들과 강을 돌아다니며 바람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서서히 붉은 모습도 사라지고 점점 어두운 색깔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발자국 소리일거야...)
낙엽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지쳐갔습니다.
  (모르겠어, 바람이 무언지... 왜? 바람을 쫓아가야 하는지!..
    난 무언지...  왜 태어났는지...  또 어디로 가는 건지...
    이 길을 다 가면 무엇이 나올지...  

    왜? 내겐 모두 대답을 안해주고 질문만 하는 걸까...

    '넌 누구니?', '이름이 뭐니?', '어디로 가니?'....)
낙엽은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지쳐갔습니다.  

그리고 몸을 움츠려 땅에 엎드리고 어디로든 날아가려 하지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야!"
낙엽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미안.. 난 눈이 없어.. 그래서 볼 수가 없어..."
낙엽은 이미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허리 부분이 부러져 버렸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눈이 없다고?"
  "그래, 난 지렁이야!  우린 원래 눈이 없어.

   그러던 어느날 두더지 아저씨를 만나 햇님에 대해서 들었어..

   아주 멋있는 얘기였지.. 그래서 난 햇님을 보기 위해서 길을 나선거야.."
  "그랬구나..."
낙엽이 대꾸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엄만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리셨지.  

   밖으로 나가면 위험할 뿐 아니라...

   눈이 없기 때문에 햇님을 볼 수가 없다고..."
  "안됐다..."
낙엽은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난 괜찮아..

   난 내가 어떻게 태어났고 누군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난 어떻게 살 것인지가 궁금할 뿐이야."
  "그래...?  넌 나보다 더 행복한 거 같아...

   난, 어떻게 살 것인지 모르겠어...

   넌 용기있게 네 길을 가는구나...

   난 내가 찾아야 할 바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걸... "
  "그런데... 넌 햇님을 봤니?"
  "응! 봄, 여름 내내 햇님만 보고 살았는 걸..."
  "그래! 햇님은 어떻게 생겼니?"
지렁이가 흥분하여 낙엽을 재촉하며 물었습니다.
  "햇님은 둥그렇고 언제나 환하게 웃고 계셔...

   따사로운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내 몸이 푸른 빛을 잃어갈수록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
  "그럴 줄 알았어... 햇님은 아름다울 거라 항상 믿어왔어...
   반드시 직접 보고 말거야!"
  "그래, 꼭 성공하길 빌께..."
  "너두..."
둘은 또다시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삶은 만나는 것이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이다.
   삶은 흐르는 것이다.
   잡을 수 있는 것은 자신 뿐
   시간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삶은 잃어버리거나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만나는 것이다.


  "누구세요?"
  "난 눈이란다.  이제 너는 쉬거라..

   너의 몸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이 잉태할 거란다."
  "이제 저는 죽는 건가요?"
  "죽음은 없단다.  삶은 흐르는 거란다.  

   너의 생명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는 거란다."
  "하지만 저는 아직 바람을 만나지 못했는걸요..  

   죽기 전에 그를 만나야해요.."
  "바람? 그는 너와 항상 함께 있었쟎니?"
  "예?"
  "바람이 없었다면 네가 어떻게 하늘을 날며 이곳까지 올 수 있었겠니?"
  "내가... 바람과... 함께 있었...다고...?"
  "바람은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으니

   못 만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럼 어떻게 알 수가 있나요?"
  "바람은 온 몸으로 만나는 거란다.  

   너는 이미 바람을 만났고 그러니 찾을 수가 없는 거지."
또다시 바람은 낙엽을 살며시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눈 덮인 들녘에는 햇살이 쏟아져 내렸습니다.